‘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 표지
마티스블루가 조영주 작가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를 출간했다.
책 소개
그녀의 심장이 멈춘 순간, 세상이 멈춰버렸다
신비로운 은빛 보름달이 빛나는 밤의 예측 불허 시간 여행
엉뚱한 여정의 끝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심장이 멈췄지만 죽기에 실패한 ‘그녀’가 도착한 곳은, 은달이 뜨는 밤에만 열리는 카페 은달. 그곳에는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할머니가 있다.
“가끔 새로운 길을 찾는 것도 좋아요.”
달빛 아래 시간이 멈춘 세상에서 길을 잃은 그녀에게 할머니가 손을 내밀며 말했을 때,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라진 할머니를 찾고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하게 될 줄은. 빵을 구워야만 움직이는 카페 은달이 시공을 넘나들며 백 년 전 경성, 달의 뒷면 등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그녀를 데려다준다.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는 세계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추리소설, 스릴러, 청소년 소설 등으로 독자들을 만나온 조영주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인 시간 여행 판타지이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 작가의 마음이 많이 투영된 주인공 ‘그녀’는 수줍고 서툴며 인생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여리디여린 사람이다. 그러나 이 엉뚱하고 돌발적인 시간 여행을 따라가며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시간’과 ‘나 자신’이 가장 강력한 내 편이 돼줄 것이라는 믿음을 얻게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어서 시간이 흐르면 좋겠네요. 그래야 죽는 일을 마칠 수 있거든요….”
-본문 중에서
‘붉은 소파’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조영주 작가는 장르소설로는 처음 이 상을 수상하며 독자들에게 끝날 때까지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스토리의 힘을 보여줬다. 이후 추리소설, 스릴러뿐만 아니라 청소년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작품으로 활동하며 독자들을 만나온 작가가 이번에는 신작 장편소설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로 독특한 시간 여행 판타지를 선보인다.
“전 그냥, 시간여행자일 뿐이에요. 정확히는 멈춘 시간만 여행할 수 있는 조건형 시간여행자일 뿐이죠.”
-본문 중에서
상상력으로 빚어낸 기묘하고 아름다운 세계
인생을 회피하며 생을 접으려고 하는 주인공 앞에 나타난 카페 은달. 굴뚝 위에 걸린 신비로운 은빛 보름달 때문인지, 그녀의 심장이 멈춘 순간 세상도 멈춰버린다. 그리고 시작된 기묘한 시간 여행으로 카페 은달과 함께 예상치 못한 곳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도와주며 그녀는 스스로를 믿는 법을 배워나간다.
시간이 멈춘 사이, 카페 은달에서 ‘적합한’ 빵을 구워야 하는 특별한 조건을 채워야만 시간을 여행할 수 있다는 독특한 설정은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향할지, 어떻게 결말이 날지 독자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리고 지붕 위의 굴뚝이 거대한 은달의 꼬리처럼 그려지고, 가볍고 포근한 모닝빵이 카페를 대기권 밖 달까지 보내주며, 사과꽃파이가 우아하고 부드럽게 카페를 띄워주기도 하는 등 예측할 수 없는 귀여운 상상력으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조영주 작가가 건네는 엉뚱하면서도 따뜻한 응원
“이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보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시간이 멈춘 후 버릇처럼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갖다 대며 심장이 뛰는지를 체크하는 그녀는 시간이 흘러 죽는 일을 마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죽기도 쉽지 않다. 카페 은달이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1926년의 만세운동, 1945년의 해방된 경성, 1969년의 달의 뒷면 등 예측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이 다섯 번의 여행을 통해 다섯 명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목숨을 구해내며, 심장박동을 느끼고 살아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에도 용기를 내보며 씩씩하고 당차게 세상에 맞서고자 한다. 결국 그 일을 해낼 사람은 나 자신, 그리고 흐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미지의 세상은 두려운 곳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대감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며 미리 불안해하기보다는 카페 은달의 지붕 위에서 바람을 느끼고 별을 세며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삶은 그렇게 작은 행복이 모인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차례
23시 52분
1장 한밤의 티 파티
2장 할머니의 맛
3장 오버 더 레인보우
4장 공백의 48분
5장 사과나무 꼭대기
6장 기자 구보 씨의 찰나
7장 운수 좋은 날
…… 그리고 은달이 뜬 어느 밤
작가의 말
조영주 작가는
경기도 평택에 산다. 사는 곳, 가는 곳,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아 글로 쓴다. 세계문학상, KBS김승옥 문학상 신인상,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2011년 장편소설 ‘홈즈가 보낸 편지’를 시작으로 ‘붉은 소파’, ‘혐오자살’, ‘반전이 없다’ 등 형사 김나영 3부작을 집필했다. 2021년 ‘크로노토피아’를 시작으로 시간을 테마로 한 3부작을 쓰고 있으며,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는 그 두 번째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 사건 일지’, ‘취미는 악플, 특기는 막말’ 등의 앤솔로지에 참여했고, 2022년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 ‘유리가면’을 출간했다. 에세이로는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어떤, 작가’, ‘나를 추리소설가로 만든 셜록 홈즈’ 등이 있으며, 그 밖에 앤솔러지 ‘당신의 떡볶이로부터’, ‘환상의 책방 골목’, ‘코스트 베니핏’, ‘십자가의 괴이’ 등을 기획 및 출간했다. ‘환상의 책방 골목’은 러시아, 인도네시아, 터키 등에서 출간됐고,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붉은 소파’는 태국에서 출간됐다.
책 속으로
그녀는 죽지 않았다. 의자를 걷어찼으니 죽어야 했다. 올가미를 잘못 맨 걸까? 그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에 걸린 로프를 찾았다. 나뭇가지도, 로프도 제대로 걸려 있었다. 그녀 혼자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는 사실만 달라졌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죽어볼 셈이었다. 의자에 올라가 목만 매달면 끝이다. 그런데 의자마저 사라졌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밤하늘의 은달은 그대로였지만 아까까지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스산하기 짝이 없던 은달이 이제는 세상을 감싸는 따듯한 빛을 뿜고 있었다. 게다가 그런 은달에 꼬리가 달려 있었다.
-15쪽
“우리는 이쪽으로 갈 거예요.”
기분 탓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가리키는 방향에 은빛으로 발하는 뭔가가 있었다.
“저쪽에 길이 있을까요?”
“나만 믿어요. 길이 있어요.”
“죄송하지만 아는 길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가끔 새로운 길을 찾는 것도 좋아요.”
할머니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할머니의 손을 맞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은달 카페의 공기처럼 따듯했다. 그녀의 불안감이 훨씬 나아졌다.
-33쪽
“어때, 심장이 안 뛰지?”
사실이었다. 소년의 심장은 고요했다.
“처음엔 나도 놀랐어. 하지만 이젠 이게 나은 것 같기도 해.”
소년은 이 상황이 낫다는 누나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시간이 좀 더 멈춰 있는 편이 나은 건 확실했다. 그래야 더는 아무도 죽지 않을 테니까.
-128쪽
그간 그녀는 수없이 다양한 죽음의 방식을 상상해왔다. 그중에 추락사는 없었다. 그것도 하늘에 두둥실 뜬 집 위, 철새 떼에 부딪치는 바람에 떨어져 죽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녀가 갖은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은달 카페는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쾅 하고 둔탁한 느낌이 왔다. 은달 카페가 뭔가에 부딪친 것 같았다. 이제 그녀는 은달 카페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충돌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사과나무예요! 사과나무에 걸렸어요! 우린 살았다고요!”
-185쪽
사과꽃파이는 지금껏 그녀가 구웠던 그 어떤 빵보다도 우아하게 은달 카페를 띄웠다. 은달 카페는 구름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녀는 은달 카페가 구름 아래서 천천히 움직이는 만큼 이동하는 시간대도 현재와 별 차이가 없길 바랐다.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진 듯했다. 은달 카페가 땅에 착륙했을 때, 바깥 풍경이 낯익었다. 고개를 돌리니 동아일보 사옥이 보였다. 저 멀리 광화문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사람들은 한복과 양복을 적당한 수준으로 섞어 입고 있었다.
-213쪽
지금껏 그녀는 여행을 하며 자신이 구운 빵만 먹어왔다. 베이킹은 어디까지나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좀 더 멀리 보자면 죽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남이 굽는 빵을 먹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늘 남을 위해서 빵을 구웠다. 생초콜릿은 할머니를 위해, 소금빵은 차월우를 위해, 모닝빵은 소년을 위해, 팬케이크는 닐 암스트롱을 위해, 사과꽃파이는 백설을 위해…… 그리고 지금 이 단팥빵은 구보를 위해 굽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빵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는 스스로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행복해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행복이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 모든 걸포기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늘 그랬다.
-230-231쪽